KRX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대해부

2009년 03월 08일 (일) 14:35:49 PDF보기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한국거래소(KRX) 시스템이 곧 국가 금융시스템이다”. KRX시스템이 건실하게 운영되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역으로 KRX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의 금융시스템은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KRX가 설립 이후 올해 최대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올초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전사적으로 체질전환이 불가피해졌고, 문패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서 한국거래소로 바꿔달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모든 거래가 이뤄지는 창구의 인프라를 통째로 바꾸는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작업을 추진해왔다.

지금껏 운영해온 메인 프레임을 버리고 오픈 시스템인 유닉스 플랫폼으로 교체하는 등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달 23일 드디어 KRX가 차세대 시스템을 개통할 예정이다.

한국거래소(KRX)는 오는 23일 차세대 시스템 개통을 앞두고 테스트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거래소(KRX)는 오는 23일 차세대 시스템 개통을 앞두고 테스트 작업이 한창이다.

그렇다면 개통을 앞둔 KRX 차세대 시스템은 어떤 수준일까.KRX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만한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초기 개발단계부터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KRX만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원장을 자체 관리하고 있는 33개 증권사와 코스콤에 위탁 운영하고 있는 40개 증권사들과 연계해 진행되는 대규모 통합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규모도 컸고, 장기간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개통 시점이 연기되고, 프로젝트 관리가 허술하다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관련 업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동안 진행된 프로젝트 추진 과정과 그 이면을 살펴보면 KRX 차세대 시스템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다.

◇말 많은 KRX 차세대 시스템=KRX 차세대 시스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워낙 대규모 프로젝트여서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상충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는 했지만 초기 컨설팅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초기 컨설팅 단계에선 한국IBM이 참여한 것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메인 프레임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IBM측에 메인프레임을 유닉스로 전환하는 KRX 차세대 프로젝트 컨설팅을 맡기는 것이 바람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KRX 자회사인 코스콤에 개발과 운영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도 잡음이 일었다. 개발 능력에 대한 이슈가 특히 부각됐는데, 이를 놓고 KRX와 코스콤간 알력이 적지 않았다. 결국 코스콤에서 개발과 운영을 맡고, KRX가 프로젝트의 PM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최근에는 차세대 시스템 오픈 시점이 늦어지면서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올랐다. 600여 억원이라는 거금이 투자됐는데,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 경쟁력이 확보됐는지에 대해 차가운 눈초리가 있는 것이다.

A증권사 CIO는 “중요한 국가 인프라 구축 사업인데도, 그동안 진행 과정을 보면 KRX측의 프로젝트 관리에 허술한 점이 많았다”며 “테스트를 보다 엄격하게 추진한다는 명분하에 오픈 날짜를 늦췄지만 애초부터 프로젝트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허술한 프로젝트 관리=증권사 CIO들이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 불만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KRX가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매끄럽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70여 증권사들에게 개발 진척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

KRX측은 당초 각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증권사들의 답변 내용을 그대로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했다. 증권사 담당자들이 주관적인 잣대로 “80% 정도 개발됐다”라고 말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고 프로젝트를 관리해 나갔던 것. 테스트 과정에서도 바빠서 참여하지 못하겠고 봐달라고 하는 증권사들이 있었는데, 그냥 넘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B증권사 CIO는 “1월 말에 오픈했으면 CNN 뉴스 감이 될뻔 했다”며 “국가신용도에 문제가 되는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으로 추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테스트 작업이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데도 그대로 방치한 것은 분명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선 KRX측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은 개통 시점을 늦추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개통시점을 연기하면서 지금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증권사별 개발 상황들을 면밀히 점검하고, 막바지 테스트 작업에 한창이다.

KRX 차세대 시스템의 가동 날짜가 연기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가적인 금융 인프라가 탄생하는 만큼 내실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드러났는 미흡했던 진행 과정들이 단순히 오픈 일정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신뢰도와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달 23일 오픈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KRX의 차세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것. KRX는 이제 차세대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선진 거래소와 견줄 만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함에 동시에 프로젝트 과정에서 잃은 신뢰도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감리 업체가 없었다=KRX의 이번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는 제 3의 감리업체가 없었다. 물론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만 하더라도 법적인 의미에서 ‘공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감리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KRX를 주축으로 70여개가 넘는 증권사들과 연계해 진행하는 대규모 통합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감리 필요성에 대해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기업들이 연계되면서 2인 3각 게임과 같은 프로젝트였고, 구축 기간 또한 장기전이었기 때문에 감리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는데, 왜 감리 작업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않는다”며 “감리 작업을 진행했다면 프로젝트 진행에 다소 까다로운 점이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미흡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RX IT통합추진단 정창희 부장은 “감리 업체들이라고 해도 거래소 업무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이고, 감리 부분을 제도적인 것으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오픈 연기에 따른 후유증 우려돼= KRX 차세대 시스템이 2달 정도 오픈 날짜가 연기되면서 증권사들의 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1월 28일 오픈 예정이었지만 3월 23일로 두달 연기되면서 증권사별로 추진하고 있던 다양한 개발 작업들의 추진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

특히 KRX 차세대 프포젝트와 일정에 맞춰 자체적으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던 현대증권과 대신증권의 경우 피해액이 수십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 인력비용만을 따졌을 때 산출된 것이고, 실제 프로젝트 일정 차질에 따른 부수적인 개발 작업들까지 따진다면, 그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관련 증권사 CIO는 “차세대 개발 인력들이 반 이상 빠졌음에도 테스트 기간동안 2달여 동안 상주해 있어야 하는 인력들만 계산해도 20억원이 넘는다”며 “개발 업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비용을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어 골칫거리가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형 증권사 CIO들은 대부분 2년 넘게 일정 조정을 해오면서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어떻게 오픈 예정 3주전에 일정이 바뀌는지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또한 오픈 일정이 연기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사전에 전혀 의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던 다른 개발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차세대 프로젝트과 견줄만한 규모의 개발 작업은 아니지만 퇴직연금시스템을 비롯해 자금세탁방지(AML), 리스크관리시스템 등이 줄줄이 대기 상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KRX만의 책임으로 전가할 상황은 아니다. 증권사 한곳이라도 준비가 완료되지 않으면 오픈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불만을 드러내긴 난처한 상황이다.

KRX측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KRX의 회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의 문제를 우리가 안고 가는 부분도 있고, KRX 측의 미흡한 부분을 회원사들이 이해해 주는 부분도 있다”며 “지금은 누군가의 잘잘못을 논하기보다 3월 하순 정상적으로 오픈해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3월 23일 오픈, 문제 없는가=23일 KRX의 차세대 시스템 가동을 앞두고 KRX를 비롯해 여의도 증권가는 들썩이고 있다. 한창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KRX측은 지금까지의 테스트 작업과는 달리 실제 정규 장 운영 시간과 현물 시세를 적용해 KRX와 각 증권사간 업무 정합성을 최종 검증하는 작업을 세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현업부서의 사용자가 느끼는 불편과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회원사 지점의 현업부서가 직접 참여하는 연계 테스트도 계획중이다.

KRX IT통합추진단 정창희 부장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확정한 날짜다. 동경증권거래소도 차세대를 진행하면서 2번 정도 연기한 적이 있다”며 “증권사나 은행사가 몇 차례 연기하는 것에 비하면 준비가 잘 된편이었고, 한 달 정도 안정화 테스트를 더 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3월 23일 이후로 다시 연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2월 4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만큼 차세대 시스템을 하루 빨리 오픈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3월 23일은 무조건 가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통합 거래소로 거듭나려면= KRX 시스템의 경쟁력은 증권선물시장의 백년대계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근시안적 시각에서 탈피해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급격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관련 기관들과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업계 한 컨설턴트는 “우리나라 거래소의 수익은 아직도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정보 서비스나 신규 상장(국내외 상장), IT 개발 등 부가적인 서비스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60% 이상을 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선진 거래소 처럼 IT로 돈을 벌어야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나스닥 및 북유럽 증권거래소 운영업체인 OMX의 경우 수익의 60% 이상이 차세대 시스템 수출인데, 이런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차세대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KRX측에 따르면 차세대 시스템이 개통되면 0.16∼2초 가량 소요되던 거래소와 회원사간 매매체결시간이 0.08초로 단축된다. 또 일 처리호가 2600만건이던 것이 차세대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4000만건으로 향상된다.

일각에서는 차세대 시스템이 단순히 통합 운영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수준으로만 업그레이드 된 것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에쿠스급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아반떼급 수준에 그쳤다”는 것.

진정한 차세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과의 연계 거래 지원에도 문제가 없어야 하며, 해외에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KRX의 향후 과제다.

■KRX 차세대 시스템이란.

KRX 차세대 시스템은 노후화된 현재 전산시스템을 재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여기에 KRX 출범 전 시장 체제별로 분산돼 있던 접속시스템과 매매체결시스템, 청산결제시스템, 정보분배시스템 등 4개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시스템 재구축을 통해 시스템 자원의 중복에 따른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다. 자본시장통합법의 발효에 따라 확대되는 시장 유동성에도 적극 대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KRX측은 차세대 시스템을 통해 IT 경쟁우위를 확보하고,해외 시장과의 연계거래지원 등 해외 시장 진출의 포석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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